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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의 파업이 잠정적으로 끝났다. 이번 파업은 MBC가 전면제작 거부 등을 주도적으로 하면서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진출을 허용하려 했던 방송법은 일단 스톱이 됐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2월 국회에서 상정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섣부른 자축은 이르다. 어찌됐건 이번 파업의 승리의 핵심은 MBC이다.

반면 KBS는 총파업에 불참한 이유로 모진 질타를 받았다. 여기에 보신각 타종방송 왜곡논란까지 겹치면서 거의 ‘병신’ 취급을 당했다. 한 때 진취적이고 개혁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KBS가 어떻게 반년 만에 이렇게 무너지게 된 것일까.

김경래 KBS 기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치가 떨린다”

지난해부터 KBS를 출입하면서 만나게 된 김경래 선배. 그는 <미디어포커스> 구성원이면서 KBS 사원행동 등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 혐의로 인해 쫓겨나고 그는 저 멀리 과천 정부종합청사로 출입처를 배정 받았다. 그는 이번 총파업에 참가하지 못한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언론 노동자로서의 최소한의 연대의식도 없다. 정권과 조중동의 방송 장악, 재벌의 방송 사유화에 대한 최소한의 위기의식도 없다. 동료들이 파업을 하고, 길바닥에서 농성을 벌여도 그저 ‘정치적’인 행위로 인식할 뿐이다. 진정 ‘정치적’인 정권의 방송 장악 프로그램이 착착 진행이 돼도 거기에 반대하는 것은 역시 ‘정치적’이기 때문에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뻔뻔한 이율배반과 자기 부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부끄럽다. 사력을 다해 방송의 공적인 가치를 지키는 동료들을 보면서, 우리 KBS는, 나의 자랑스러운 KBS는 정권과 함께 ‘법과 질서’를 합창하고 있다.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MBC지 우리가 아니라면서 방관하고 있다. 우리에게 칼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의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정연주 사장 해임에 반대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이병순 사장 취임을 반대했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미디어포커스> 폐지에 반대했다. 그런데 이제 다시 부끄럽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치가 떨린다.


대부분의 젊은 KBS 기자들과 PD들은 건강하다. 그래서 입사 10년 차 이하 기자·PD들 200여명들은 집단적으로 성명을 내며 반발한다. 피켓시위도 하고 연좌농성도 한다. 온갖 몸부림도 쳐본다. 하지만 내부는 조용하다. 잠잠하다. 반응조차도 없다. 왜 그런 것일까.

KBS의 옛 이름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

1973년 전까지 KBS는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이었다. KBS 비극의 발단은 여기서부터 시작될는지도 모른다. 당시까지 그들은 공무원 신분이었고, 출입처나 여기저기서 촌지를 받아 먹는 습성이 관행화 돼 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다. 당시 동양방송은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2TV가 됐다. 안기부 출신 특채를 비롯해 학도호국단 등 당시 완장차고 앞잡이 노릇했던 사람들이 대거 기자와 PD로 들어섰다.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무더기로 채용한 사람들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 이들 가운데 장교에서 예편해 KBS로 들어 온 이들은 그들이 군대에서 쓰던 지휘봉으로 후배들의 군기를 잡고, 군홧발로 조인트를 까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런 권위주의적인 습성이 남아있던 KBS의 습성은 잘 바뀌지 않았다. 90년대까지도 그랬다. 그러다 조금씩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KBS 탐사보도팀장으로 한국탐사보도의 기틀을 마련한 김용진 기자의 일화를 말한다.

90년대 중반 제가 처음 부산 금정서로 경찰기자를 나갔을 때 무뚝뚝하게 앉아 있던 선배는 무척 차가웠습니다. 선배는 마우리도 잘 돌지 않는 경찰기자였는데, 어쩌다 형사계장 앞에 나타나면 그날로 경찰 몇 명의 목이 날아갔죠. 소리 없이 나타나 전광석화처럼 치고 빠지는 김 선배의 전투력은 대단했죠. 명절 때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받은 촌지를 다시 돌려주자고 한 것도 김 선배였고, 돌려주는 악역도 김 선배가 자청했죠.

그런 김 선배가 기자생활 시작한 80년대 말까지만 해도 KBS 기자라면 관료들이 “에이 같은 공무원끼리 좀 봐주쇼”(과거 KBS는 공보처 산하 하나의 국에 불과했던 서글픈 적도 있었다)라고 빌붙기 일쑤였습니다. 87년 6월 항쟁 때 초량동에 있던 부산KBS총국은 시위대의 돌 세례를 받기도 했죠. 그런 수모를 뒤로하고 겨우 공영방송 꼴을 갖춘 KBS가 21세기 대명천지에 ‘공영방송’과 ‘국영방송’도 구별 못하는 권력에 둘러싸여 난도질당하고 있습니다.



MBC, 허리가 튼튼하다

MBC는 어떨까. MBC는 10년 마다 파업을 겪으며 새로운 동력을 아래로부터 위로 끌어 올리게 된다. 즉 파업을 경험한 세대들이 10년 이 지나 중간 간부를 형성하는 과정을 10년 주기로 겪었다는 것이다.

1990년 봄, 노태우 정부는 방송 민주화에 뜻을 둔 서영훈 KBS 사장을 해임하고,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서기원 사장을 ‘낙하산’으로 내려앉혔다. 당시 KBS 노조는 이에 반발해 36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정부는 두 차례 경찰력을 투입해 노조원 15명을 구속하고, 450여 명을 강제연행했다. 당시 MBC 노조도 엿새 동안 연대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1992년 10월 MBC 간판 앵커이자 노조 간부였던 손석희 아나운서가 파업을 주도해 구속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당시 노조가 50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요구했던 건 ‘공정방송’이었다. 1990년 9월 최창봉 당시 사장은 우루과이라운드로 타격을 입게 될 농촌 현실을 취재한 〈PD수첩〉 방영 연기를 요구했고, 안성일 당시 노조위원장과 김평호 사무국장은 이에 격렬히 항의했다. 회사 쪽은 두 사람을 해고했고, 노조와 함께 운영하기로 한 ‘공정방송협의회’도 일방적으로 거부했다. 노사 대립은 2년 가까이 계속됐고, 결국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파업으로 귀결됐다. 결국 회사 쪽이 공정방송협의회 운영 규정을 강화하기로 합의하면서 해결됐다.

(최창봉 전 사장은 지난해 동아시아 PD포럼으로 중국 텐진에서 뵙고 인사도 했다. 그 때는 어떤 분인지는 몰랐고 나중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는 참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2008년, 방송법 투쟁으로 MBC 전사들이 거리로 나섰다. 여기엔 예능도 드라마도 시사교양도 아나운서도 PD도 기자도 기술직도 카메라도 CG담당도 홍보 경영 20대 30대 40대도 모두 하나가 됐다. 여기에서 차이가 난다. 그들이 KBS와 차이점이 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파업의 경험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싸울 수 있는, 그리고 건강한 언론인으로 MBC가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다.

KBS노조도 싸웠다. 그들도 △90년 방송구조 개편안 투쟁 △96년 선진방송 5개년 계획 투쟁 △97년 노동법 투쟁 △99년 통합방송법 투쟁 △2005년 방송법 개정안 투쟁 등으로 싸웠다. 그러나 KBS는 허리가 튼실하지 않다. 간부들의 보수화가 가장 무서운 법이다.

KBS 인사, 모든 것이 장악 됐다

80년대 후반 KBS 공채로 입사한 PD는 기자와 만나 최근의 인사에 대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공정방송노동조합, PD협회 정상화추진협의회 등 멤버들이 핵심인사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30여명정도 된다고 한다. 이들은 정연주 사장 퇴진 운동에 앞장서며 <인물현대사> <한국사회를 말한다> 등 KBS의 개혁적으로 일컬어졌던 프로그램들에 대해 ‘노무현 좌파코드’ 프로그램이라며 비판했다.

20년 동안 KBS에 있었지만 이번만큼 정파적인 인사를 본 적이 없다. 전두환 때도 이렇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 인사라는 게 그렇다. 승진을 시키고 뽑아 올리는 것이라 뭐라고 하면 자기를 안 뽑아 줘서 그런 것처럼 말하는 것도 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하기에 뭐한 것도 있다. 그간도 정치적인 색깔은 있었지만, 그런 사람들이 2-3명 있었다고 하면 선후배간의 상식적인 선에 있어서 선후배간의 선망 그동안의 작품을 가지고 했다고 지금도 생각. 김영삼 때는 TK로 갔고 노무현 때는 노조나 협회 사람들 중용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노골적이다.



이들은 KBS 드라마, 예능, 교양제작국장, 외주, 각 지방총국 보도·편성 국장으로 KBS 주요 자리에 안착했다. 과연 앞으로의 KBS 모습은 어떨까.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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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판타스틱 냉장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