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직뱅크가 좀 더 풍요로워 지려면… 딴따라의 음악일기2009/01/26 11:16
1년 전 자칭 타칭 대중가요 한 인기작곡가는 기자에게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문제점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토로했다.
M.net에만 가도 가수들이 무대 설 수 있는 환경이 잘 돼 있다. 무대도 훨씬 세련 돼 있다. 그런데 지상파 프로그램은 어떤 줄 아나. 음향도 M.net 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기득권을 못 버린다. 오후 늦게 방송 있어도 새벽 댓바람부터 불러내서 군기잡고 그런다.
리허설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다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그의 말이 좀 과장된 것이 있다고는 치더라도 PD들의 이런 태도들이 꽤나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그 말은 동시에 지상파 프로그램의 위기를 드러내 주는 말이었다.
지난해 말 열린 <2008 골든디스크>를 이번 설 연휴에 봤다. 2008년을 휩쓸었던 원더걸스 <Nobody>의 리믹스 버전이 나왔다. 그런데 이전 리믹스 버전과는 또 달랐다. 선예, 예은, 소희, 선미, 유빈 등 5명이 보사노바, 테크토닉, 일렉트로니카 등으로 편곡된 <Nobody>를 각각 자신이 맡은 파트에 맞게 단독 무대로 꾸며 눈길을 끌었다. 다른 가수들도 무대 세트도 다양하게 바뀌었다. 지상파 방송사가 주춤한 사이 그 사이를 뛰어난 기획력과 화려한 연출력으로 MKMF 등을 연출한 M.net의 힘이었다.
서태지, 다시 한 번 권위에 도전하다
얼마 전 서태지는 SBS <김정은의 초콜릿> 출연을 두고 편집 참여권, 최상의 음향시설 요구 등을 요구하며 설왕설래 했었던 기억이 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PD의 편집권을 넘보는 억지논리에 불과하다고도 주장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서태지의 이번 요구가 방송사 관행에 일침을 놓는 것이라고 말했다. 양현석은 이런 논쟁에서 공격받는 서태지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록 밴드가 우리나라 방송사에서 라이브로 공연을 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다른 가수들이야 미리 준비한 MR테이프(반주만 녹음한 테이프)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지만 록밴드는 그럴 수 없다. 드럼이면 드럼, 키보드면 키보드, 밴드 악기 각각의 음향을 일정 수준으로 잡아낼 수 있는 설비와 전문 스태프가 국내 방송사에는 전무한 실정이다. 그것도 생방송으로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방송사에서 갑-을 관계인 PD-가수의 관계에서 특히 음을 조율하기 까다로운 락 밴드는 음악 PD에게는 골칫거리다. 기피대상인 것은 사실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 프로그램의 경우 사전 리허설에 가수 1인당 부여된 시간은 길어야 30분 남짓이다. 신인은 10분 내외다. 카메라의 동선, 댄서들과 동선 협의, 스텝 회의 및 조명 회의 등을 짧은 시간 내 끝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드럼, 기타, 베이스, 신서사이즈 등 일일이 음을 조율하며 라이브 음악을 들려줘야 하는 밴드 음악은 힘들다. 드럼을 예로 들어보자. 풋베이스, 스네어 드럼, 스몰탐, 라지탐, 플로어탐, 하이햇 심벌, 크래쉬 심벌 등 대충 잡아도 9개가 넘는 각기 다른 소리들을 일일이 마이크를 대며 소리를 잡아야(마이킹, miking) 한다. 드럼만 짧게 잡아 30분정도 걸린다. 다른 악기들까지 소리 잡는데 고려하는 시간들을 고려하면 대략 남감 해진다. <뮤지뱅크>, <쇼! 음악중심>, <인기가요>에서 밴드 음악을 구현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컸다. 그러나 늘 그렇듯 현실이라는 문제점에 부딪쳐 언제나 ‘사전녹화’라는 미봉책으로 피해가고 갔다. 그래서 서태지의 문제점 제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사전심의 제도 폐지 등 관성화 된 제도를 부수는 데는 서태지가 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논쟁은 서태지 출연이 무산됐지만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하는 것은 문제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됐던 가수들은 자신들이 가장 빛날 수 있는 무대를 원한다. 최적의 사운드를 구현해 낼 수 있는 시스템, 노래의 편곡에 따라 무대 세트가 조절이 가능한 곳을 원한다. 이젠 ‘서태지 특혜논란’이라는 프레임을 벗어나 좀 더 풍성한 논의를 해야 하는 이유다.
